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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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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문학교육에 관한 고찰 레폿
이 시대의 문학교육에 관한 고찰
이 시대의 문화교육에 관한 고찰을 하고 쓴 리포트입니다. 이 시대의 정서교육으로서의 문학교육에 관한 내용에 대해 쓴 글 입니다. 이시대의문학교육에관한고찰
문학이 근대산업과 소비 행태에 의한 자연파괴를 역사적 모순으로 인식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연과 인간, 자연과 문명을 상호 적대관계에 서게 하는 이 모순이 궁극적으로 인간파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마르쿠제 등이 강조했던 것처럼 자연이 노예화될 경우, 그 자연의 불가피한 일부인 인간 자신도 노예화의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인간에게 착취대상으로만 파악되는 한 자연은 그 인간에 대한 모든 호의를 회수한다. 근대적 생산/소비방식은 인간의 삶과 가치체계로부터 자연을 제외하고 그 품위를 조롱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삶의 양식들과 가장 현저하게 구분된다. 인간에게서 배제 당한 자연은 역으로 인간을 배제한다. 시인은 눈 내리는 숲으로 가지 못하고, 아이들은 비를 겁내고, 농사꾼은 땅을 믿지 못한다. 하이데거가 잘 표현했듯 수력발전용 댐이 들어선 라인강은 그 강에 내려와 물 마시던 “사슴의 라인강”이 아니다. 사슴이 마시지 못하는 물은 인간도 마실 수 없다. 강은 사슴을 배제하고 인간을 배제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상호배제적 갈등관계에 주목하는 일이 반드시 문명 그 자체에 대한 문학의 전면 부정이나 거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점은 문학이 자연파괴를 이 시대의 역사적 모순으로 인식하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근대산업으로 대표되는 문명에 자연파괴의 전적인 책임을 둘러씌우고 나면 이로부터 흔히 애꿎은 노자의 이름을 빌어, 혹은 무슨 “동양사상”의 이름으로, 아주 간단하고 손쉬운 결론 하나가 제시되는데, 그것은 문명을 포기하는 길만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주장이다. 문명의 전면 포기란 입에 올리기는 쉬워도 실천 가능성은 제로에 육박하는 순수 아이디어다. 가능성도 실효성도 없는 생각에 매달리는 것은 그 자체가 무책임하고 순간적인 병리적 위안의 추구에 불과하다. 우리가 문명을 비난할 수는 있어도 인간이 현재 이룩해 놓은 삶의 단계는 그 문명 없이는 동서양 어디서건 단 하루도 지탱되지 않는다. 동구 밖 개천에 구태여 “다리를 놓을 필요가 없었던” 그 노자의 시대로 인간은 되돌아갈 수 없다. 그 시대로 되돌아가려면 우선 지구상의 현재 인구 가운데 4분의 3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므로 “과거로의 회귀”라는 불가능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문명에 대한 전면적 거부를 제의하는 일은 문학과 문학교육이 취택할 만한 사색내용이 되기 어렵다. 우리의 시인 작가들 중에는 이 방향으로의 모색을 자연파괴의 문명에 대한 문학의 대안적 사색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6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이 시대의 문학교육에 관한 고찰
파일이름 : 이 시대의 문학교육에 관한 고찰.hwp
키워드 : 이,시대의,문학교육에,관한,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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